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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11. 선한 사마리아 사람 (눅 10:25-37)
연구원 2009-02-27 추천 1 댓글 0 조회 1146


2-11. 선한 사마리아 사람 (누가복음 10:25-37)



기도에 임하기

자세를 바르게 하고 차분하게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느낀다. 다음과 같은 기도를 간단히 드린다. 예를 들면, "주님, 어떠한 삶이 참된 이웃으로서의 삶인지 깨닫게 하옵소서. 아멘."



........누가복음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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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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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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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어느 율법교사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는 율법사의 대답이 옳다고 확언해 주신다. 이에 율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생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이 "강도만난 자"의 예화를 들어서 대답해 주신다.

..36절에서 예수님이 밝히신 바와 같이 본문의 초점은 "누가 강도만난 이웃을 도와주었는가?"에 대한 점이다. 당시 사회문화적 관습에 따르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사두개파 사람들로서 정결법을 중시했다. 아마도 그들은 강도만난 사람이 죽은 줄로 알고 그를 피해 지나갔을 것이다. 그들은 생명보다도 정결법을 더 중요시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유대전통에 따르면, 랍비들은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면 그를 도와서 치료받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와 구전법을 모두 믿는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지나쳤다. 사마리아인도 마찬가지로 구전법을 믿지않았으므로 실상 강도만난 자에게 접근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를 도와 주었다.

..당시 청중들은 제자장이나 레위인이 강도만난 자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다는 예수님의 언급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 강도만난 자는 유대인인지 사마리아인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보면 상당히 의외의 결론이었다. 즉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반목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것이었는데, 이는 기원전 8세기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통치정책에 따라 사마리아 지역의 유대인들은 외부 이방인들과 혼혈민족으로 변했고, 이 때부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지어 (요4:19)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또한 기원전 6세기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도 이에 동참코자 했으나 이들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이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을 정도로 반목이 심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사마리아인들을 배교자라고 지칭하면서 노골적으로 저주했다.

.."내 이웃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볼 때,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웃의 범위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유대인의 이웃이 되어주었음을 강조하신다.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어떤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에 당시 유대인들은 충격과 도전과 경고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즉 예수님은 "이웃"의 개념을 동족의 범위를 뛰어넘어 도움이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신다.

..한편 예수님은 당시 빈번히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예로 들었을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신약시대에 새로 건설된 신도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18마일 정도되는 경사길로서 이 길은 사막과 돌이 많은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폼페이가 이 곳에서 강도를 소탕했다고 전한다. 이 곳을 강도들이 출몰하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여리고에 거주하던 제자장들이나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에 직무수행차 정기적으로 통과해야 했던 길이었다.



말씀 읽기와 관찰



..본문 말씀이 내면에 충분히 익숙해 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다. 본문을 한 차례씩 읽을 때마다 약간(30초 정도)의 침묵시간을 갖는다. 여건이 허락하면 소리내서 읽어도 좋다. 보통 다음의 과정으로 읽는다.

1. 첫 번째 읽기: 천천히 본문을 한 번 읽는다. 다 읽은 후 일단 본문에서 눈을 떼고 약30초 정도의 시간 동안, 그 장면이 나의 내면에 스며들도록 나 자신을 말씀 앞에 개방한다.
▶ 인적없는 어느 외진 곳에서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줄테니 살려 달라고 하자,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과 옷까지 빼앗고 거의 죽을 정도까지 때려 길바닥에 버리고 간다. 그는 이제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의 눈으로 본다.

2. 두 번째 읽기: 첫 번째 읽기에서 의식했던 부분과 더불어 그냥 스치고 지나쳤던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의식하면서 다시 한 번 읽고 난 후, 본문에서 눈을 떼어 30초 정도 본문의 전체장면을 마음에 담는다.
▶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강도만난 사람은 이따금씩 자기 옆을 지나는 인기척과 발자국 소리를 듣지만 도와달라는 소리를 낼 힘이 없다.
▶ 하나님의 손길만을 갈망하는 그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강도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여분의 옷을 입히고 응급처치를 한 후 그를 부축하여 어느 주막에 데려간다.


3. 세 번째 읽기: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새로운 차원의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장면 속에 몰입하면서, 이야기 속의 새로운 영감, 새로운 발견, 그리고 의문사항 등을 집중한다. 여기서 나는 그 장면의 어느 등장인물 속으로 몰입하여 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 이제 긴장을 놓고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 이름없는 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의 모든 비용을 계산하고 혹시 추가 비용이 든 다면 그것까지도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내 자신(기도자)이 어느새 강도만난 사람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 예기치 않은 선한 이웃을 경험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어제의 사건을 어느새 뒤로하고 있었다.
▶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애써 외면하고 피했던 과거의 사람들이 기억났다.


4. 네 번째 또는 다섯 번째 읽기: 모든 잡념이나 분심(分心)이 사라진 후에, 본문의 이야기가 나의 전존재에 스며들도록 한다. 즉 내 자신이 이야기 속으로 몰입되어 갈 수 있도록 말씀을 읽는다.




복음을 경험하기


1. 은총 기도로 말씀 읽기에 들어간다. 이 기도를 통해서 내가 주님께 어떤 은혜를 구하고 싶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 드린다.
예를 들면, "하나님, 영생을 얻는 길,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복된 시간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아멘."


2. 이제부터는 이미 네 다섯 번 읽은 복음서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되살아나게 한다.
- 특정 장면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어떻게 전개되어 가고 있는지 민감하게 관찰한다.
-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에 더 깊이 몰입될수록 기도자로서의 나 자신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장면이 더욱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된다.

3. 지금 자신의 내면에서 펼쳐지고 전개되는 장면 속으로 보다 깊이 몰입해 들어간다.
- 민감하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되, 가능한 수동적인 태도를 견지하도록 한다. 이때 기도자 자신이 몰입하여 들어간 장면 속에 나타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전개 되는대로 계속 펼쳐지도록 한다. 이 때, 나 자신은 몰입되어 있는 장면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며, 또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무슨 말을 듣고, 어떤 질문이나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 이 때 도덕적, 윤리적, 신학적 사고나 삶에의 적용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 장면 속에서 기도자로서의 내 자신이 사라지면서 나의 전존재가 그 장면의 복음말씀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복음말씀 경험하기'인데 기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은 이미 영으로 기도자의 심연에 영향을 미치므로 치유 및 영적 회복 내지 성숙이 경험된다.




담화/주님과의 대화


1. 본문의 이야기를 통하여 복음을 경험한 내용을 잠시 돌아본다.
새로이 발견한 점은 무엇인가? 어떤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의문점이나 질문사항은 무엇 인가? 이 현장에서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참여자였는가? 구경꾼이었는가? 감사 할 내용은 무엇인가?

2. 위의 질문내용들을 중심으로 예수님과 구체적으로 대화한다.




반추 및 성찰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전체기도를 뒤돌아보면서 반추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너무 길고 장황하게 적지 않고 기도시간의 경험 중 특히 잘 기억나는 것(영적 위안이니 고독 등을 중심으로)을 적는다. 노트 윗부분에 날짜, 성경본문을 기록한다.

- 이 때, 전반적인 기도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주로 내 안에서 흐르고 있었던 감정이나 느낌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느껴졌는가?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가? 담화시간에 예수님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가? 기도 중에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저항감이 일어났는가? 기도 속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위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듯이 적어나가면 좋다. 이는 교훈이나 적용을 적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도 안에서 일어났던 것을 재발견하려는 의도로 경험하고 느꼈던 그대로 적는 것이다.



........주요 내용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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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하나님 나라는, 유대전통의 "사마리아인"과 "이웃"이라는 모순된 개념이 융합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현재적 사건 속에서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의 일도, 신학적 개념도 아닌 삶의 실재와 구체적인 행위 속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경험하고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실존 속에서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구해야 한다. 이 때 "이웃"이라는 개념은 인종과 사상과 윤리와 신학을 뛰어 넘는다. 이웃사랑의 범위가 무한히 확장되고 구체화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율법사는 "어느 계명이 가장 큰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한다. 즉 영생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기 보다는 종말의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인 것이다 (단 12:2).

..27절은 오직 예수만이 유대 율법의 궁극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의 삶의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자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고 요구하는 삶의 양식이다. 즉 하나님께 대한 열심, 그 분께 대한 친밀감, 그 분께 대한 충성을 이 구절만큼 잘 표현하는 구절이 없다. '마음,' '목숨,' '힘'과 '뜻'이라는 단어는 전면적이고도 총체적 헌신을 묘사한다. 이는 인간 내면의 가장 중심에서 요구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응이다. 이는 살아 있는 인간의 표현이며 자신의 생명력을 주님께 되돌려 드리는 헌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은 신봉되어야할 대상이 아니라 실천되어야 할 덕목이다 (28절). 그러나 29절 율법사의 질문은 이웃 사랑의 범위가 한정되었음을 전제한다. 그는 선을 행함에 있어 죄인에게는 예외로 해야 됨을 암시한다.

..33절에서 사마리아인의 등장은 청중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유대인의 일에 사마리아인에 끼어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를 구한다. 그의 처지가 너무나 절박한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개념은 민족과 관습과 율법을 초월한다.

..34절에서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강도만난 자를 도와준다. 그는 자신의 나귀에 그 사람을 싣고 자신은 걸어서 간다. 그리고 주막으로 데려가 다음 날까지지 그를 돌봐주면서 강도만난 자의 즉각적인 필요에 응답한다. 오늘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출처 :

  말씀으로 기도하기 2 :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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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문경, 유해룡, 오방식, 이원형 공저

출판사 : 한국기독교교육교역연구원

발행일 : 2008년 12월 30일

정 가 : 1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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